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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윌리엄 스튜어트 맥죠지 - 스코틀랜드의 아이들이 있는 풍경과 일상

작년에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관한 투표로 세상의 관심이 영국에 쏠린 적이 있습니다.

결과는 독립하지 않고 영국으로 남겠다는 것이었지만 스코틀랜드에 대해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요.

그 때 스코틀랜드의 풍광이 주는 매력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출신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첫 화가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윌리엄 스튜어트 맥죠지 (William Stewart MacGeorge / 1861–1931)입니다.

 

 

 

 

 

작은 물고기 낚시 Fishing for Tiddlers / 51.5cm x62cm / oil on canvas

작은 시내, 아이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물고기 낚시를 하는군요. 돌로 시냇물을 막고 그 곳에 모이는 고기를 잡을 계획인 것 같습니다.

미끄러질까 봐 나무를 잡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보이고 나무 밑을 정리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사용된 색과 그림에 담긴 빛이 어우러지면서 그림은 아주 화려해졌습니다.

제가 살았던 오류동에도 지금은 시멘트로 덮였지만 작은 시내가 역 근처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그 시내에서 놀다 보면 여름 오후는 우리들만 남겨 놓고 쏜살같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림 속 아이들에게 그 때 같이 놀던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붙여 주고 싶습니다.

맥죠지는 스코틀랜드의 캐스 더글라스는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이었는데 성인 남자 3명과 소년 한 명을 고용하고 있었다고 하니까 제법 규모 있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맥죠지는 아주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가 스케치 하는 것을 못하게 할 수 없었다는 기록을 보면

어려서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시소 See-Saw / 127cm x 192cm / oil on canvas

숲으로 놀러 온 아이들이 재미있는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벌목 해 놓은 나무에 굵은 나무 가지를 걸쳐 놓으니 근사한 시소가 만들어졌습니다. 역시 아이들은 노는데 천재입니다.

인원 수는 3명씩 같은데 왼쪽으로 기운 시소는 움직일 줄 모릅니다. 덩치로 봐서는 오른쪽 아이들이 이길 것처럼 보인데 말입니다.

온 몸으로 누르는 것과 팔로 당기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요. 모두들 신이 난 얼굴인데 오른쪽 흰 옷 입은 아이는 심각합니다.

이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입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오른쪽 아이들이 몸으로 나무를 눌러야 할 것 같습니다.

시소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재미에 타는 것이 거든요. 생각해 보니까 지나 온 삶도 시소를 타는 것과 같았습니다.

어떨 때는 삶의 무게가 제 무게보다 훨씬 무거워서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때가 있었지요.

맥죠지는 지역에 있는 Free Church School에 입학, 공부를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무료 신학교 같은 것 아니었을까요?

​(스코틀랜드에 살고 계시는 소연님께서 Free Church School은 스코틀랜드 기독교의 하나의 종파에서 운영하는 학교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Free church 자체가 종파 이름인데 악기를 하나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종파라고 합니다. 소연님, 고맙습니다)

이 때 같이 입학한 친구 중에는 훗날 소설가이자 정치가가 된 사무엘 크로켓도 있었습니다.

크로켓의 소설 중에는 맥죠지를 등장인물로 묘사한 부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갤러웨이 초탄 (草炭) A Galloway Peat Moss / 81.2cm x 134.6cm / oil on canvas / 1888

초탄은 이끼가 퇴적되어 흙이 된 것으로 작물을 재배하는데 사용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식구들이 모두 들판으로 나와 초탄을 캐고 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인지 물을 들이키는 소녀도 보이고 손을 머리에 대고 허리를 펴는

사내의 모습도 보입니다. 작은 수레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소녀를 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그만 일어나서 빨리 일 해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 하셔도 소녀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표정입니다.

구름이 낮게 깔린 들판 어디쯤에선가 비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소녀의 머리 속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다 사라지겠지요. 지나고 보니까 그렇더군요.

열 아홉이 되던 해, 맥죠지는 에딘버러에 있는, 오늘날의 왕립스코틀랜드 아카데미의 전신인 Trustees Academy에 입학합니다.

친구였던 크로켓과 같은 집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아마 그 친구도 같이 진학한 모양입니다.

아카데미에서 맥죠지는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2학년, 3학년 때 메달을 수상했고 아카데미에 작품이 전시되었거든요.

 

 

 

 

 

가을 Autumn / 41cm x 51cm / oil on canvas

아직 가을이 깊어지지 않았지만 나무 끝은, 잎은 붉고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숲으로 데이트를 나온 남녀의 모습도 마치 물든 단풍잎 같습니다.

여인은 앉아 있고 사내는 여인 옆에 엎드려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물소리 때문에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달콤함이 듬뿍 담긴 것은 분명하겠지요.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깊어가는 동안 가을도 조금씩 숲 깊숙한 곳으로 찾아 들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니까 숲을 벗어날 때쯤이면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도 확실하게 익어 가지 않겠습니까?

3년간의 공부를 끝낸 맥죠지는 다시 안트워프 아카데미에 입학, 공부를 계속합니다.

에딘버러에서 같이 미술공부를 했던 에드워드 호넬도 함께 했는데 호넬은 훗날 맥죠지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2년간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종교화가였던 Charles Velat의 지도를 받은 맥죠지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닷가에서의 하루 Day on the Shore / 69.8cm x 90.1cm / oil on canvas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불 피우는 것을 보면 뭔가 구울 것이 있다는 뜻인데 아무리 봐도 소녀들의 몸짓으로 봐서는 적당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나무 그늘에 서 무엇인가를 줍는 아이 둘이 보입니다. 혹시 열매를 불에 익혀 먹을 생각일까요?

참 대단한 소녀들입니다.

요즘 캠핑이 대세이더군요. 한동안 편안함을 따라갔던 우리 삶에 다시 날 것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아무 때나 숲이나 산 그리고 물로 나갔던 세대의 생명력이 다시 필요한 때가 왔다는 뜻이겠지요.

안트워프에서의 2년간 머물며 공부를 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맥죠지는 7년간의 공부도 부족했던지 다시 에딘버러에 있는 왕립 스코틀랜드

아카데미에서 실제 모델들을 놓고 드로잉을 하거나 그림을 제작하는 수업에 참여합니다. 배움이 많아 나쁜 것은 없습니다.

차곡차곡 쌓이는 내공들은 어느 순간을 절정을 향해 피어나거든요.

 

 

 

 

 

산울림, 나무 옆에서 쉬고 있는 소녀 Echo, Girl Resting by a Tree / 78.7cm x 68.5cm / oil on canvas

나무에 몸을 기대고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늘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물을 타고 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소리에 손을 귓가에 대고 소리를 모았습니다. 귓가에 닿은 소리는 이윽고 가슴을 울렸고 마침내 소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알 듯 말 듯한 소녀의 표정에서 그 소리가 소녀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끔 소녀처럼 소리를 모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올 한 해, 어떤 소리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대가 있어 참 즐겁습니다라는 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화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맥죠지 작품의 주제는 아이들과 풍경이었습니다.

숲이나 들판, 때로는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과 연어 낚시를 하는 낚시꾼 그리고 풍경이 그의 작품 속에 담겼습니다.

1910, 왕립 스코틀랜드 아카데미 전시회에 출품한 그의 작품을 두고 전시된 작품 중 뛰어난 풍경화 중 하나는 맥죠지의 연어 낚시꾼을

묘사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커큐브리 Kirkcudbright / 107.3cm x 153.7cm / oil on canvas

석양빛은 강 건너 마을의 벽에 닿았고 고요히 흐르는 강물은 마을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듯 마을 곳곳의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있는데 커큐브리를 돌아 나가는 강가에서는 어부들이 어망을 당기고

있습니다. 왼쪽의 사내가 오른쪽 사내들보다 더 힘들어 보입니다. 혼자서 어망을 당기기 때문일까요?

하루 노동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이들의 등 뒤로 점차 어스름이 밀려 오고 있습니다.

맥죠지의 작품에 영향을 준 사람은 친구 에드워드 호넬이었습니다.

호넬은 그에게 보다 밝은 색의 사용과 물감을 두껍게 발라 질감을 나타내는 임파스토 기법을 추천했습니다.

좋은 조언을 해준 친구도 멋있고 그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친구도 멋집니다.

가슴을 터 놓고 언제든지 속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둔 사람은 평생 먹을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부자 아닐까요?

물론 그 것은 각자의 기준입니다.

 

 

 

 

 

농가 풍경 Farm Scene / 25.8cm x 30.3cm / oil on canvas

빨래 하기 좋은 화창한 날입니다. 큰 물통에서 막 건져 낸 빨래들을 널어 펴고 있는 여인 앞으로 물이 후드득 떨어졌습니다.

저 정도 크기의 빨래면 혼자서는 물기를 짜 낼 수가 없지요. 나무 울타리에 널어 놓은 흰 빨래들은 불어 오는 산들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햇빛은 농가 마당 구석구석에 내려 앉아 환히 빛나고 있습니다. 소박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풍경입니다.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가슴 한 곳이 아련해지는 것은 아직은 돌아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겠지요.

맥죠지가 태어난 곳의 지역의 이름이 커큐브리였는데 이 곳을 중심으로 비슷한 화풍으로 작업하던 화가들을 커큐브리파라고 합니다.

맥죠지는 커큐브리파 멤버 중 가장 자연주의적인 화가이자 선두 주자 중 한 명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연도는 확실하지 않지만 파리 살롱전에도 출품했는데 역시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하니까 국제적인 인정도 받은 셈입니다.

 

 

 

 

 

벌목꾼 Wood Cutters / 70.3cm x 90cm / oil on canvas

숲 가장자리, 벌목꾼 둘이 나무를 자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할 만큼 튼실한 나무를 자르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수 십 년 동안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리를 지켰던 나무들의 잔 가지는 땔감으로, 나무 몸통은 손질을 거쳐 누군가의 거실과 식당을 장식하겠지요.

생명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본다면 나무는 참 멋진 스승입니다.

아낌 없이주는 나무의 마음을 우리가 조금만 더 배웠다면 그리고 배운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맑고 깨끗해지겠지요.

밑 둥만 남은 그 자리, 내년 봄에는 다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될 겁니다.

정기적으로 왕립 스코틀랜드 아카데미에 전시를 해 오던 맥죠지는 예순 여덟의 아주 늦은 나이에

마흔 다섯 살 먹은 마벨 빅토리아 엘리엇과 결혼합니다. 23년의 차이가 나는 그의 아내는 수채화가였는데 휴 먼로의 미망인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맥죠지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렇다면 이 결혼은 뭔가 이상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신가요?

 

 

 

 

 

할로윈 Hallowe'en / 92.4cm x 140cm / oil on canvas / c.1911

밤이 깊어지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등장했습니다.

호박을 파 내고 그 자리에 촛불을 넣어서 잭오랜턴을 만든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분장을 하고 사탕을 얻으러 골목길을 누비고 있습니다.

호박 등불에서 올라오는 빛 때문에 아이들 표정이 제법 무섭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귀여운 모습까지 감출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나눔의 뜻이 담겨 있는 할로윈 축제의 본질이 지금은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파티로 자리를 잡는 것 같아 할로윈 축제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면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이러다가 정말 호박 귀신을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맥죠지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작품 45점을 남겨 놓습니다.

두 사람은 정말로 사랑해서 결혼을 했겠지만 혹시 맥죠지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자신의 분신인 작품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도

아내가 필요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분신을 돌봐야 했거든요.

새해 첫 그림들을 편한 것으로 고르고 싶었는데 맥죠지를 만나 기분이 좋습니다.